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사방.이곳저곳 가릴것 없이 모든 곳) 귀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력(오금.무릎의 구부러지는 오목한 안쪽 부분)을 펼 수 없다
자 방안에는 성주님(가정에서 모시는 신의 하나. 집의 건물을 수호하며 가신 가운데 맨 윗자리를 차지한다)
나는 성주님이 무서워 토방으로 나오면 토방에는 지운귀신(땅의 운수를 맡아본다는 민간의 속신)
나는 무서워 부엌으로 들어가면 부엌에는 부뚜막에 조왕님(부엌을 맡은 신)
나는 뛰쳐나와 얼른 고방으로 숨어 버리면 고방에는 또 시렁에 제석님(민간신앙에서 무당이 모시는 열두 명의 신)
나는 이번에는 굴통(굴뚝) 모퉁이로 달아 가는데 굴통에는 굴때장군(굴뚝을 주관하는 신 그래서 키가 크고 살갗이 검은 사람이나 옷이 시커멓게 된 사람을 놀림조로 '굴때장군'이라고도 했다)
열혼(얼이 빠져서)이 나서 뒤울안으로 가면 뒤울안에는 곱새녕('곱새'는 '초가의 지붕마루에 덮은 'ㅅ'자형으로 엮은 이엉'을 말하고 '녕'은 '지붕'의 방언이다) 아래 철릉귀신(집 터와 장곡대를 관장하는 신)
나는 이제 할 수 없이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대문간에는 근력세인(힘이 센) 수문장
나는 겨우 대문을 삐쳐나 바깥으로 나와서
밭 마당귀 연자간 앞을 지나는데 연자간에는 또 연자망귀신(연자간을 맡아 다스리는 귀신 '연자망'은 '연자매'의 방언)
나는 고만 기겁을 하여 큰 행길로 나서서 마음 놓고 화리서리(팔을 흔들며 빠르게 걸어가는 모습) 걸어 가다 보니
아아 말 마라 내 발뒤축에는 오나가나 묻어다니는 달걀귀신(눈,코,입이 없고 달걀 모양으로 생겼다는 귀신)
마을은 온 데 간 데 귀신이 돼서 나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성주님
가장 먼저 방안에는 성주님으로,
성주신(成主神)이라고 부르는 집을 지키는 신(神)의 한 분 이시다.
성주신은 본래 황우양이라 불리는 목수(木手)였다고 하는데,
하늘나라 옥황궁이 회오리바람에 무너지자,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하늘에 올라가서 궁궐을 다시 짓는 일을 맡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궁궐을 짓는 틈을 타서
소진들 건달 소진랑이 그의 재물과 부인까지 잡아갔는데,
꿈으로 위급한 상황을 느낀 황우양은
삼년걸려 할 일을 석 달 만에 해버리고 땅으로 내려와
소진랑을 물리치고 재산과 아내를 되찾았다고 한다.
이 인연으로 황우양은 집을 지키는 성주신이 되고,
부인은 집터를 지키는 지신(地神)이 되고,
이들 부부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다섯과 딸 다섯은
오토지신(五土地神), 오방부인(五方婦人)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성주님은 가옥(家屋)의 안전을 다스리는 신(神)으로,
이 시(詩)에서는 안방에 계신 신으로 나와 있지만,
주로 대청마루 높은 곳이나 대들보에 계신다고 믿어서
그곳에 성주단지를 만들어 두고
집안의 안전과 화목을 위해 빌었는데,
집을 새로 짓거나, 이사를 하거나
혹은 남자주인(大主)이 17세,27세,37세,47세와 같이 7자가 들어가는 해에는
10월에 날을 가려 성주받이 굿을 하기도 하였는데
그때 무당이 '성주풀이'를 부르기도 한다.
성주신은 집안에 나쁜일이 생기거나 식구들이 화목하지 못하고 나쁜 일들을 하면
집을 나가버리신다고 한다.
성주신이 안계시면 집안은 화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성주신 모시기를 조상님 모시듯이 하였다.
토방으로 나오면 토방 디운 구신 -
토방(土房)은 방에 들어가는 문 앞에 좀 높이 편평하게 다진 흙바닥으로
쪽 마루를 올려놓는 위치이기도 하다.
이곳을 이집안의 땅의 운수를 맡아보는 디운(지운:地運)신이 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디운신(地神)은 집터를 지키면서 집안을 일으키는 일을 맡아보는 일을 하는데,
집안에 나쁜 기운이 들지 못하게 지킬 뿐만 아니라,
땅을 기름지게 하여 농사를 잘 되게 해주기도 하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정성들여 지신님을 모셨는데,
짚으로 오쟁이를 만들어
그 안에 베 석자와 짚신 한 켤레를 넣은 다음
나뭇가지에 걸어 두기도 하고,
앞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쌀을 백지나 베에 싸서
묻어 놓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새해가 되면 마을 사람들이 지신을 위로하려고
집집마다 들러 풍물을 치면서 놀기도 하였는데,
이를 '지신밟기'라고 하였다.
지신은 뜨면 안좋다고 생각을 해서 밟아서 꼭꼭 눌러 주어야
집안이나 마을에 우환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이다.
부엌에는 부뜨막 조앙님 -
부엌의 부뜨막 조앙님은 부엌을 주관하시는 조왕(竈王)님으로
부뚜막을 깨끗이 하고 먹을 것을 귀히 여기면
집안에 드는 온갖 병과 우환으로 부터 부엌을 지켜 주시지만,
칼처럼 끝이 뾰족한 물건을 부뚜막위에 함부로 두거나,
부뚜막을 더럽히고, 발로 밟거나,
먹을 것을 함부로 낭비하면
잡귀들에게 길을 내주어 화(禍)를 불러들인다고 한다.
옛날 사람들은 부엌 부뚜막에 조왕보시기라는 물그릇을 놓아 두기도 하고,
부엌의 바람벽에 백지를 붙여 놓기도 했다.
또 부엌 선반에 삼베조각을 담은 바가지를 올려 놓기도 하고,
접은 종이와 북어를 걸어 두기도 하였다.
나의 기억에 시골 할머님의 부엌에 목이 긴 병에 소나무 가지를 잘라서 넣어 두었었는데,
그 가지에 하얀 천이 묶여져 있었던 것 같다.
고방에는 또 시렁에 데석님 -
고방(庫房)은 '광'의 옛말로, 곳간이라고 하겠다.
시렁은 물건을 올려 놓기 위하여
방이나 마루 벽에 두개의 긴 나무를 가로질러 선반처럼 만들것으로,
데석(제석( 帝釋))님을 모신 자리라고 하겠다.
고방의 시렁 제석님은 집안 사람들의 수명과
곳간의 모든 곡식을 주관하는 신으로 모셨던 분으로
집안에 시렁을 만들어 제석항아리를 두어 그 안에 쌀을 담고 제석님께 빌기도 하였던 풍습이 있다.
굴통에는 굴대장군 -
굴통은 굴뚝으로 굴뚝을 지키는 신으로 굴대장군님이 계신다.
우리들이 키가 크고, 몸이 굵으며 살갗이 검은 사람을 놀릴때에
'굴대장군'같다고 하기도 한다.
뒤울 안에는 곱새녕 아래 털능구신 -
전통적인 한국의 가옥에서
정원은 뒤쪽 울타리 안에 나무를 심고 앞마당은 비워 두었는데,
이 시에서의 털능구신(철능, 철령, 철융, 천룡신)은
주로 집 뒤꼍에 있는 울 안쪽에 자리하는 터주신이라 하겠는데,
이 시(詩)에서 곱새녕은 지붕을 덮는 기와라고 하겠고
그 아래에는 털능신이 계신다고 본것이다.
털능 구신은 집을 대표하는 나무(대추나무나, 감나무등 뒷 쪽에 심은 나무)로 여기기도 했으며,
또는 장독간을 지키는 신으로,
옛날 사람들은 장을 담구는 것도 중요한 집안일로 여겼기 때문에
장을 잘 담궈서 식구들이 일년내내 장을 맛 있게 잘 먹을 수 있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장독대의 신에게도 정성을 다했다고도 한다.
대문간에는 근력 세인 수문장 -
대문을 지키는 신으로 수문장(守門將)으로 불리는 문신(門神)이 있는데,
옛날 사람들은 문(門)을 소중하게 생각하였는데,
문으로 온갖 것이 드나들기 때문에,
사람뿐만 아니라 복과 행운, 나뿐 잡귀들도 문으로 드나든다고 믿었다.
그래서 집 대문에는 대문을 지키는 신장(神將)으로
수문장대감(守門將大監)이라고 불리는 신이 있다고 믿고
그런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 귀신 장수나, 도깨비 그림등을 그려 넣기도 했다.
연자간에는 또 연자망구신 -
연자간(硏子間)은 연자맷간으로 연자매로 방아를 찧는 방앗간이다.
연자간의 연자매를 다스리는 신으로 할머니로 여겨서 연자망구신이라 한 것 같다.
내 발뒤축에는 오나가나 묻어다니는 달걀구신 -
달걀귀신은 달걀모양으로 생겼다는 귀신으로,
이 시에서는 집 밖에 다니면서 여기저기에서 묻어다니는 귀신
또는 잡신의 총칭으로 표현한 것 같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할머니에게서 달걀귀신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다음날 집 밖에 나가는 게 두려웠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함부로 아무데나 돌아다니면
그러한 귀신이 붙는 다는 이야기 였는데,
달걀귀신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밤늦게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도록 하는
좋은 교육 효과를 갖게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무(巫)제자들은 달걀을 가지고 여러가지 풀이를 하곤한다.
'발끝에 따라든 부정','뜬부정'이라고 하여 상문(상가집귀신)이 들었거나 병귀가 들었을 때,
달걀을 깨서 그런 나쁜 귀신들을 물려 내기도 한다.
1940년대에 쓰여진 이시에는 집안의 곳곳을 관장하는 수호신들이 나오고
시인은 이 신들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해서 그러한 시인의 모습을
'오력(오금)을 펼 수 없을 정도' 또는 '얼혼이 나서(얼과 혼이 나가서)'
그리고 '디겁(질겁)을 하여'로 표현하고 있는데,
시인이 무서워한다는 것은
그러한 신들의 직능(職能)의 위력을 믿기때문이라고 보겠다.
믿지 않는다면 무서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에 비추어 본다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같은 시 이겠지만,
다른 나라의 신들이나 귀신, 괴물, 마법사이야기에는
많은 호기심과 탐구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정작 우리나라의 신들에 대해서는
미신이니 속신이니 하면서 부정하고 없애려하는 것 같다.
우리의 전통 신앙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이러한 가택신에 대한 믿음과 신들에 대한 공경심으로
오늘의 우리들이 이자리에 있게 되었음을 자각하고,
이 시대의 우리들 역시도 이러한 옛믿음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것이
이 나라, 이 터전에 태어난 우리 모두의 숙명임을 인식했으면 하는 바램이다.